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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야기

나의 기타 이야기

지금 나한테는 기타가 3대 있다.
그 중 2대는 받은 거다.
받은 2대 모두 배울려고 사놓고 그냥 집에서 놀고 있는 걸

"기타칠 줄 아는 사람에게 주고 싶다."

는 대학 후배와 직장 동료가 선물(!)해 준거다.

두대중 한대는 50수의 클래식기타고(50수는 50만원짜리라는 뜻.. 일 수도 있다. 부잣집 딸이 산 거라 그런지 소리가 무척 맑고, 예뻤다), 다른 하나는 일렉기타다.

그리고 3대의 기타중 나머지 한대는 얼마 전에 내가 내 돈주고 산 통기타다.


배경 참... -.-;  왼쪽부터 통기타, 클래식 기타, 일렉기타


내가 처음 기타를 갖게 된 건 중학교 1, 2학년 때였다.
당시 아파트에는 공동 쓰레기장이 각 입구마다 하나씩 있었다.

중학교 1, 2학년 어느 가을날, 엄마가 빨리 와보라고 해서 테라스로 나가 엄마가 보고 계신 방향을 내려다 보니, 공동 쓰레기장에 기타가 하나 버려져 있는 게 보였다. 엄마는 그걸 가져오라고 하셨고, 나는 일단 나가서 (당시 오후 5시 정도였다) 기타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너무 밝아 도저히 그걸 들고 나올 용기가 안났다) 밤 11시쯤 어두운 때에 나가서 그걸 들고 냅다 뛰어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기타에 전혀 문외한이었던 나는 그걸 들고 악기사에 갔고, 거기서 그게 클래식기타라는 걸 알았다. 악기사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줄까지 다 끼어주었다. (요새는 그런 데 없다) 기타는 클래식기타였지만 나는 통기타 책을 사서 통기타처럼 쳤다.

통기타 배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책에 나온대로 코드잡고 주법대로 치고.
디스코, 락, 슬로우 고고, 슬로우 락, 힐빌리등 다양한 주법을 배웠다. 책 하나만 보고.

같은 반 친구가 기타 배우고 싶다고 해서 내가 봤던 그 책을 빌려줬었는데 그 친구는 너무 어렵다면서 며칠만에 금방 돌려줬었다.
음.. 이것도 감이 좀 있어야 배울 수 있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다 망가진 클래식 기타를 가지고 놀다가 아버지가 통기타를 사주셨다. 1989년 정도? 그때 당시 10만원이 채 안되는.. 아마 3만 5천원 정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노가다 기타다. 나는 그 기타를 쓰면서 하이코드는 거의 포기하거나 나름의 방법으로 쉽게(ㅎㅎ) 잡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처음부터 좋은 기타를 썼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주변에 기타치는 친구들이 몇 있었지만 나보다 현저히 나은 수준으로 치는 애는 없었다.
자기가 기타 잘친다고 하는 놈이 하나 있었는데, 평소에도 뻥이 심한 친구라 넌지시 기타 줄이 몇개냐고 물어봤는데 '4개던가.. '라고 하길래 바로 기대 접었다. 기타 줄은 6개다. (베이스 기타는 4개. 조지 윈스턴은 12줄 기타를 직접 만들어 가지고 다닌다지..)

여튼 중고등학교때는 주변에 기타를 배울만한 사람이 없었다.


고등학교때 기타때문에 생긴 에피소드 하나. ㅋ

고등학교 1학년 첫 소풍때 우리 학교가 5월 3일날 송도유원지로 소풍을 가고, 다음 날인 5월 4일날 부천여고가 같은 곳으로 소풍을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처음에는 우리랑 부천여고랑 같은 날 소풍을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틀어진 것이라는 후문도 돌았다.

여튼 소문대로 하루 차이로 각각 소풍을 가게 되었는데,
언놈이 소풍에 기타를 가져왔다.

와~ 기타 좀 보자. 하면서 만져볼려고 하는데 (아직 만져보기도 전에) 누군가 기타도 못치는게 저러고 있다고 했다. 
욱하는 마음에 기타를 빌려 들고 나가서 La-bamba를 불렀다. ㅋ.
그래서 상으로 노트를 받았는데 그걸 송도 유원지 미니 골프 코스장에 놓고 와버렸다.

아.. 그래도 기념인데.

고민하다 다음날 부천여고가 송도유원지로 소풍간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같은 반이었다가 부천여고에 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남희라는 친구인데, 남녀공학에 합반이었던 우리 반 인기투표에서 남학생 100%의 지지를 받아 여자 1위를 차지했던 친구다.
지금 생각봐해도 서구적인 마스크에 굉장히 이쁘고 다소곳한 이미지다.  요새 하이킥의 신세경과 쫌 비슷하다.

여튼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하려고 졸업앨범에 나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전화받은 아줌마가 심하게 화를 내셨다.
도대체 X남희가 누구냐? 도대체 X남희가 누구길래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가 오냐

그랬다. 졸업앨범에 나온 남희네 집 전화번호는 잘못된 번호였고 (당시는 핸드폰은 커녕 아직 삐삐도 안나왔을 때임) 그 번호로 뭇 사내놈들이 맨날 전화를 해댔던 거였다. 요즘 같았으면 소송이라도 들어갔을 일이다.

다시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번호로 남희한테 전화를 했고, 내가 노트를 잃어버린 경위와 위치를 설명해 줬다.
남희는 그걸 찾아왔고 우리는 그 다음 주(아니면 그 다음다음 주) 일요일에 같이 다녔던 중학교에서 만났다.

남희를 만나러 나가기 전, 아버지는 노트 3권중에 1,2권은 그 찾아준 female 친구에게 주라고 하셨고,
엄마는 추리닝 입고 나가지 말고 옷 제대로 입고 나가라고 하셨는데,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그냥 추리닝 입고 나와서 말한마디 못하고 어색하고 뻘쭘하게 있다가 남희가 간다고 해서
 
벌써 가게?
... (아! 남희의 대답이 기억은 나는데 입밖으로 내기가 싫다.)

하고 그냥 헤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런 등신.

암튼 모 그런 일이 있었다. ㅋ. 남희라는 이름은 엄마가 몇번 얘기하셔서 울 와이프도 알고 있다. ㅎ


그러다 대학엘 갔고, 음악 동아리에 들어갔다.
기타 잘치는 선배님들이 많았다.
그 중엔 맞아가며 기타를 배웠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내 보기엔 맞아가며 기타를 배운 게 아니라 저렇게 치니까 맞았던 게 아닐까 싶었다.

이정선 기타교실도 사서 보고 선배들한테 배우기도 하고 해서 기타치는 수준이 좀 올라가서 연주회에 반주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잘치면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어떤 누나가

"문식이가 기타를 너무 잘쳐서 한때 잠깐 좋아했었다."

라는 애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그게 이유가 된단 마린가! 그리고 꽤 기분 나빴다. 쳇. 기타를 잘쳐서라고? 쳇. (내 다른 데는 어디가 어때서?)


물론 지금 와이프랑 연애할 때도 기타를 들려준 적이 있다.
전화 통화하다가 캐논 변주곡을 들려줬었는데 중간에 틀리니까 그제서야

"오! 너가 치는 것 맞구나" 라고 했다. 모 CD라도 틀어놓을줄 알았나? ㅋ

그리고 와이프 생일날 (당시는 여자친구였지) 와이프 친구들 모아놓고 그 앞에서 기타치면서 노래 부르는 이벤트를 준비했었는데, 집 열쇠를 안가지고 나오는 바람에 집에서 기타를 못 꺼내서 못한 적도 있다. 그날은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차만 마시고 나왔다. ㅎㅎ


2009년. 내 나이 벌써 35다.
12월 12일 기타를 샀다. 30만원 정도의 통기타다. 소리가 너무 좋다.


내가 산 모델은 Crafter Stage55 Premier이다.






자체적으로 조율기를 내장하고 있어 위 사진처럼 바로 조율할 수 있어서 너무 편하다.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당장 쓸일은 없지만 미래를 위해 픽업코드가 내장된 모델로 선택. 바나나잭과 캐논 잭을 모두 지원한다. ^^V


제일 중요한 기타 소리가 참 좋다. 앞판은 가문비나무, 뒷판은 마호가니로 되어 있는데 소리가 정말 만족스럽다. 굉장히 맑고 깨끗한 소리가 난다. 그리고 음량도 풍부하다. 여태 만져왔던 다른 노가다 기타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다. 낙원상가에서 파시는 분이 하이코드 잡기도 편하게 튜닝해 주셔서 연주가 연습이 늘 즐겁다. (아놔 그런데 명함이나 영수증 따위를 전혀 안 챙겨서 다시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거.)

기타소리를 녹음해서 올려놓고 싶은데 집에 장비가 영 후져서 몇번 시도해 보고 포기해 버렸다.